제주 구좌 동복환해장성, 바다와 바람에 새겨진 조선시대 해안 방어의 흔적
이른 아침, 제주시 구좌읍 해안을 따라 달리다 보면 바다와 나란히 이어진 돌담이 길게 펼쳐집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그 돌벽이 바로 ‘동복환해장성’이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검은 현무암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고, 그 뒤로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조용히 다가가 돌을 손끝으로 만지자 차가운 감촉과 함께 미세한 소금기가 전해졌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해안 방어 성곽으로, 지금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바다와 바람 속에 남은 그 시대의 숨결이 여전히 느껴졌습니다. 단단한 돌담 하나가 세월을 넘어 제주의 역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1. 바닷가 길 끝에서 만난 돌성
동복환해장성은 구좌읍 동복리 해안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동복환해장성’ 또는 ‘동복리 해안 성곽’을 입력하면 마을 초입의 공영주차장으로 안내됩니다. 차량을 세우고 바다 쪽으로 향하면, 곧 낮은 돌담이 길게 이어진 장성의 윤곽이 보입니다. 길은 평탄한 흙길로 되어 있으며, 양옆에는 억새와 잡풀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입구에는 ‘국가유산 동복환해장성’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작은 안내문이 있습니다. 바람이 세지만 공기가 맑아 시야가 멀리까지 트였습니다. 바다 쪽으로 발을 옮길수록 돌담의 굴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마치 해안선 자체가 방어선이 된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2. 해안선과 하나가 된 돌의 구조
장성의 구조는 단단한 현무암을 층층이 쌓아 만든 형태로, 아래쪽에는 큰 돌을,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촘촘히 배치했습니다. 높이는 약 2미터 내외, 폭은 1.5미터 정도로, 바닷바람과 파도를 동시에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된 모습입니다. 돌 사이에는 시멘트 같은 접착제가 없지만, 서로 맞물려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각 돌의 표면에 바닷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일부는 하얀 소금 결정이 반짝입니다. 벽의 일부 구간은 세월에 마모되어 낮아졌지만, 전체 윤곽은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돌 위로 억새가 자라 있고,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부드러운 소리를 냈습니다. 인공적인 복원보다 자연스러운 세월의 결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3. 제주의 해안을 지켜온 방어선의 의미
동복환해장성은 조선시대 중기,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제주의 북쪽 해안을 따라 건설된 환해장성의 일부입니다. ‘환해(環海)’란 말 그대로 바다를 두른 성곽을 뜻하며, 동복 구간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길게 남아 있는 구간입니다. 안내문에는 “성곽 위에 초소가 있었으며, 병사들이 연대와 함께 신호를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성벽 위로 올라가면 북쪽으로는 함덕 해안이, 동쪽으로는 세화 포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파도의 세기가 달라지고, 그 자연의 흐름 속에 성곽의 존재 이유가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단단한 돌담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방패였다는 사실이 실감되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관람 환경
장성은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구좌읍청에서 관리하며, 정기적으로 잡초 정리와 주변 환경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입구에는 간단한 안내 표지판과 유래 설명이 있고, 별도의 입장료나 울타리 없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바닥은 평평한 흙길로, 운동화만 신으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벤치 몇 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중간중간 돌담의 끊어진 부분을 복원한 흔적도 보입니다. 조명이 없어 밤에는 관람이 어렵지만, 낮 시간대에는 햇살이 돌 위에 비쳐 그림자가 아름답게 드리워집니다.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보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위적인 복원보다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인근 장소
동복환해장성을 둘러본 뒤에는 인근 ‘별도연대’와 ‘동복리4.3사건공원’을 함께 방문하기 좋습니다. 두 장소 모두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 있으며,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이동하면 ‘세화오일장’과 ‘세화해변’이 있어 식사나 커피 한 잔으로 여정을 이어가기에 알맞습니다. 특히 오후에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장성 뒤편으로 붉은 빛이 번지는데, 그 풍경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바다와 돌담, 하늘이 겹쳐지는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으면 제주의 시간 감각이 느려집니다. 조용히 걷고, 바람을 느끼고, 바다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정리하기에 이보다 좋은 코스는 없었습니다.
6. 관람 시 팁과 현장 포인트
이곳은 해풍이 강하기 때문에 가벼운 외투나 머플러를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성벽 위로 올라서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외곽에서 전체를 조망하면 오히려 더 웅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바다를 등지고 성곽을 사선으로 담으면 깊이감 있는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오전보다는 오후에 방문해야 햇살이 성곽의 질감을 더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바람에 실린 소금기가 얼굴에 스칩니다. 그 순간, 성벽이 단순한 돌의 집합이 아니라 세월과 기억이 겹쳐진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짧은 시간의 방문이었지만, 오랜 이야기를 들은 듯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마무리
동복환해장성은 제주의 바람과 바다가 만들어낸 시간의 구조물이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바다를 등지고 서 있던 그 돌담은, 더 이상 방어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여전히 섬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곽 위로 떨어지는 햇빛, 돌 사이로 피어난 풀, 그리고 그 위를 스치는 바람—all이 어우러져 제주의 고요한 역사 풍경을 완성했습니다. 돌아서는 길에 바다를 다시 바라보니, 돌담의 그림자가 파도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평화가 그 돌 위에 쌓인 세월 덕분임을, 바람은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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