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남근석에서 마주한 고요한 신앙과 자연의 상징적 순간
흐린 하늘 아래, 정읍 칠보면의 남근석을 찾았습니다. 이른 오전이라 공기가 약간 서늘했고, 들판에 낀 안개가 천천히 걷히는 중이었습니다. 산자락 끝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돌기둥 하나가 멀리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생각보다 크기가 컸고, 주변의 돌담과 어우러져 묘한 기운을 풍겼습니다. 자연석이지만 형태가 일정하게 뻗어 있어,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비가 다듬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예로부터 풍요와 생명의 상징으로 이 돌을 모셔왔다고 합니다. 특별한 장식이나 안내 없이 그저 한 덩이 돌로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신성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연과 믿음이 함께 빚은 공간이었습니다.
1. 칠보면 들길을 지나 남근석으로 향한 길
남근석은 정읍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의 칠보면 무성리 근처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정읍 남근석’을 입력하면 좁은 시골길을 따라 이어집니다. 도로 양옆으로 논과 밭이 펼쳐지고, 길가에는 팽나무와 감나무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정표가 많지 않지만, ‘남근석 보호구역’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입니다. 차량을 세울 수 있는 공터가 인근에 있고, 거기서 도보로 3분 정도 걸으면 낮은 언덕 위에 남근석이 보입니다. 길은 흙으로 되어 있지만 완만해 걷기 어렵지 않습니다. 주변은 조용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정적 속에서 돌이 더욱 뚜렷이 돋보였습니다.
2. 언덕 위에서 마주한 돌의 존재감
남근석 앞에 서면 먼저 느껴지는 건 크기와 질감입니다. 높이는 약 2m, 둘레는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였습니다. 표면은 거칠고 곳곳이 풍화로 닳아 있었지만, 돌의 색이 고르게 회백색으로 빛났습니다. 바람에 닿은 부분은 매끈했고, 그늘진 면에는 이끼가 얇게 퍼져 있었습니다. 돌 주변에는 낮은 돌담이 원형으로 둘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작은 자갈이 고르게 깔려 있었습니다. 안내판에는 ‘생명과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석’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지만, 그 짧은 문장보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훨씬 강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이 돌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오랜 신앙의 흔적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3. 남근석이 지닌 전통적 의미
정읍의 남근석은 예로부터 마을의 수호와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 풍년과 자손 번성을 상징하는 의미가 컸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이곳에 모여 제를 올렸고, 그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현재는 의례가 간소화되었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여전히 이 돌을 신성하게 대합니다. 남근석은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누군가 인위적으로 깎거나 조각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안에서 생명의 상징을 읽어냈습니다. 형태보다 의미가 먼저 존재했던, 신앙과 자연의 공존이 잘 드러나는 유산이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돌의 표면이 빛을 받아 묘한 생동감을 띠었습니다.
4. 주변 풍경과 관리 상태
남근석 주변은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보호를 위한 낮은 울타리가 돌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안내판도 새로 교체된 듯 깨끗했습니다. 마당에는 낙엽이 적당히 흩어져 있었고, 흙길 옆으로는 작은 소나무 두 그루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벤치가 하나 설치되어 있어 잠시 앉아 머물기에 좋았습니다. 봄에는 들꽃이 돌 주변을 채우고, 가을이면 억새가 언덕을 덮습니다.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져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장소였습니다. 관리자는 자주 찾지 않아도 방문객들이 깨끗하게 이용하는 듯했습니다. 공간 전체에 인위적인 흔적이 거의 없고, 자연 그대로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보기 좋은 칠보면 인근 코스
남근석 관람 후에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무성서원’을 찾아갔습니다. 조선시대 대표 서원으로, 남근석의 자연신앙과 대비되는 학문의 공간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이후 칠보산 자락의 ‘칠보사’를 들러 잠시 산책을 이어갔습니다.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산길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점심은 칠보면 중심의 ‘칠보한우국밥집’에서 따뜻한 국밥을 먹었습니다. 진한 국물의 맛이 여정의 피로를 녹였습니다. 오후에는 ‘정읍천변 산책로’를 걸으며 남근석에서 느꼈던 고요함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남근석과 주변 명소를 함께 둘러보면 자연, 역사, 신앙이 한데 이어지는 여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6. 방문 시 유의할 점과 추천 시간대
남근석은 사유지에 인접해 있으므로, 방문 시 큰 소리를 내거나 담장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이른 오전이나 해질 무렵 방문하면 돌의 색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석양이 질 때 햇빛이 비스듬히 닿으면 표면이 금빛을 띠어 아주 아름답습니다. 비 온 뒤에는 바닥이 미끄러우므로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안내판 외에 별다른 시설이 없으므로, 물이나 간단한 음료를 미리 준비하면 좋습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돌에 손을 대거나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머물며 그 고요한 기운을 느끼는 것이 이 장소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자연이 만든 신비를 존중하며 바라볼 때,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집니다.
마무리
정읍 칠보면의 남근석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상징이었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형태 속에 인간의 기원이 담겨 있고, 그 앞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침묵이 오히려 많은 말을 대신했습니다. 바람이 돌을 스치며 내는 낮은 울림은 오래된 기도의 메아리처럼 들렸습니다. 화려한 장식도, 안내 방송도 없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더 큰 존재감을 전했습니다.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연의 질서가 새삼스레 느껴졌습니다. 다음에는 새벽 햇살이 돌 위로 번질 때 다시 찾아, 그 빛의 결을 눈에 담고 싶습니다. 남근석은 조용히 서 있으면서도, 세월과 사람의 마음을 품은 살아 있는 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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