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고요를 품은 영동 고당리서당
가을의 끝자락, 단풍이 천천히 지던 날 영동 심천면의 고당리서당을 찾았습니다. 들판 사이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가자 낮은 언덕 위에 나지막한 기와지붕이 보였습니다. 서당은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잔잔한 논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람이 살짝 스쳤고, 낙엽이 마루 위로 몇 장 흘러들었습니다. 작은 마당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서당은 크지 않았지만 정제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햇빛이 기와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나무기둥의 질감이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사람의 말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공간이었지만, 그 고요함 속에 옛날 아이들의 낭독 소리가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이곳은 세월이 머물러 있는 장소였습니다.
1. 마을 끝자락의 오르는 길
고당리서당은 영동읍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 심천면 고당리 마을의 북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고당리서당’을 입력하면 마을회관을 지나 좁은 시멘트길로 안내되며, 끝자락의 흙길을 따라 2분 정도 걸으면 서당이 나타납니다. 입구에는 ‘국가등록문화재 고당리서당’이라 새겨진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옆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주차는 마을 입구 공터에 가능하며, 대중교통 이용 시 심천역에서 하차 후 택시로 약 10분이면 도착합니다. 길가에는 감나무와 억새가 어우러져 있었고,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감잎이 바닥에 부드럽게 흩날렸습니다. 서당에 이르는 길은 짧지만 고요했습니다.
2. 단정한 구조와 따뜻한 목재의 질감
고당리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로, 팔작지붕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대청마루가 있고, 양옆으로는 훈장방과 학동방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목재 기둥은 단단하면서도 곡선이 살아 있고, 창호의 문살은 정교하게 짜여 있었습니다. 바닥의 나무판은 손때가 묻은 듯 반들반들했고, 햇살이 스며들어 따뜻한 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천장은 노출된 서까래 구조로, 목재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벽면의 흙빛과 목재의 붉은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서당 앞마당에는 돌로 만든 작은 디딤계단이 놓여 있어, 학동들이 오르내리던 흔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공간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3. 고당리서당의 역사와 교육적 의미
이 서당은 조선 후기인 19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지역 유림들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공간입니다. 이름 그대로 마을의 ‘높은 집’이라는 뜻을 지니며, 학문과 인격을 함께 닦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에는 “학문은 스스로 밝히고, 덕행은 몸소 실천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고, 이 문구가 당시 교육의 중심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서당은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한학 교육이 지속되었고, 지역 어르신들에 따르면 1950년대 초까지 아이들이 이곳에서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배웠다고 합니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세대의 학문과 도덕이 이어진 장소였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배움의 터’로서의 기운이 공간에 남아 있었습니다.
4. 세심히 관리된 마당과 주변 풍경
서당의 마당은 넓지 않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자갈이 고르게 깔려 있고, 주변의 돌담은 일부 복원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색감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마당 가장자리에 작은 국화가 심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며 향기를 퍼뜨렸습니다. 서당 뒤편으로는 낮은 숲이 이어져 있고,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었습니다. 건물 옆에는 작은 평상이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있으면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코끝에 맴돌았습니다. 별도의 장식이나 시설이 없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이곳의 매력이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세심히 닿아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인공적이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머물수록 이곳의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5. 인근 역사 유산과 함께 걷는 길
고당리서당을 관람한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심천향교’를 함께 방문하기 좋습니다. 두 곳 모두 조선시대 유교 교육의 전통을 보여주는 유적지로, 공간의 성격이 서로 이어집니다. 또한 인근의 ‘매곡리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으로, 서당의 고요함과는 또 다른 종교적 평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점심은 심천면 중심가의 ‘심천국밥집’에서 소머리국밥이나 두부두루치기를 추천합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마을의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좋습니다. 고당리서당을 중심으로 하루 일정의 문화 탐방 코스를 짜면, 학문과 자연, 그리고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여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6. 방문 시 알아두면 좋은 팁
고당리서당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 방문이 적당하며, 여름에는 햇볕이 강하므로 오전 시간대를 추천합니다. 주차는 마을 입구 공터를 이용하면 되고, 서당 앞의 진입로는 좁아 차량 접근은 제한됩니다. 촬영은 자유롭게 가능하지만, 건물 내부의 마루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벌과 모기가 많으므로 밝은색 긴옷을 착용하는 것이 좋고, 겨울에는 언덕의 바람이 차가워 두꺼운 외투가 필요합니다. 비가 온 뒤에는 흙길이 미끄러우니 주의해야 합니다. 서당의 고요한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소음을 줄이고, 천천히 걸으며 공간의 질서를 느껴보면 좋습니다.
마무리
영동 고당리서당은 작지만 품격이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목재의 따뜻함과 흙벽의 단정함, 그리고 바람이 스치는 마당의 소리까지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세월이 만든 깊은 고요가 공간 전체에 스며 있었습니다. 오래전 학동들의 발소리와 훈장의 음성이 바람 속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마루 앞에 섰을 때, 햇살이 나무 사이로 흘러내리며 집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배움의 터이자 인내와 예의의 상징이던 서당이 지금까지 이처럼 온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다시 봄에 찾아, 꽃이 피는 서당의 풍경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배움의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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