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에서 만난 고요한 가을 품격
가을 햇살이 길게 드리워진 오후, 안성 양성면에 자리한 정무공 오정방 고택을 찾았습니다. 입구 앞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잎이 흩날렸고, 고택의 담장 위로 오래된 기와가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들렀는데,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나무문이 살짝 열리며 삐걱 소리를 냈고, 그 소리마저도 이곳의 세월을 느끼게 했습니다. 오래된 집 특유의 냄새와 바닥의 나무 결이 발끝에 전해지며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습니다. 잠시 앉아 마루에 손을 얹자 햇살이 따뜻하게 스며들었고, 문틈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커튼처럼 한지를 살짝 흔들었습니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만큼, 공간이 가진 온기가 잔잔하게 전해졌습니다.
1. 고즈넉한 길 끝의 고택 입구
양성면 시내에서 차로 10분 남짓 달리면, 고택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나타납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비석과 함께 ‘정무공 오정방 고택’ 표지판이 보입니다. 주차 공간은 담장 옆 공터에 마련되어 있으며, 두세 대 정도는 여유 있게 세울 수 있었습니다. 비포장 길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양성면사무소 근처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립니다. 길가에는 감나무와 대나무가 줄지어 있어 걷는 동안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분이 친절히 방향을 알려주셔서 헤매지 않았고, 초입의 낮은 돌담을 지나며 조용히 숨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바람결에 들리는 새소리와 흙길의 촉감이 도시의 리듬과 전혀 달라 여유로웠습니다.
2. 고택이 품은 시간의 결
대문을 통과하면 ㄱ자 구조의 본채와 사랑채가 마주 보입니다. 기둥의 나뭇결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오랜 세월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안채는 낮은 천장과 두꺼운 대들보가 인상적이었고, 한쪽에는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실내는 흙냄새와 나무 향이 은근히 섞여 있었으며, 벽에는 한지창을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머물렀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에는 기와 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집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관리하시는 분께서 방마다의 구조와 전통 건축 방식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셨는데, 옛사람들이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해 설계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단순히 오래된 집이 아니라 세대의 지혜가 담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정무공의 정신이 스며든 자리
이 고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오정방 선생의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온 집이라고 합니다. 사랑채의 툇마루에는 선생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었고, 붓글씨의 힘 있는 획에서 그의 기개가 전해졌습니다. 다른 고택들과 달리 이곳은 유교적 품격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대문 안쪽에 들어서면 마당 중앙에 돌로 된 장독대가 배열되어 있고, 주변에 조용한 연못이 자리해 있습니다. 오래된 소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 앉아 있으면 마치 선생이 제자들과 담론을 나누던 장면이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공간 전체가 인위적인 장식 없이 담백하게 유지되어 있어 오히려 그 절제미가 돋보였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 세심한 관리와 따뜻한 배려
고택을 관리하는 문화해설사분이 상주하고 계셔서 방문객들이 궁금한 점을 편히 물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자용 슬리퍼와 간단한 안내 책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마루 옆에는 손 세정용 물과 티슈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여름철에는 선풍기가, 겨울철에는 난로가 마련되어 있어 계절에 따라 체류가 쾌적하게 유지된다고 합니다. 화장실은 외부 독립형 구조지만 내부는 새로 단장되어 깨끗했습니다. 곳곳에 나무 향을 은은하게 퍼뜨리는 방향제가 놓여 있어 오래된 공간의 특유한 냄새를 덜어주었습니다. 작은 세부까지 신경 쓴 흔적 덕분에 역사적 장소임에도 불편함 없이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관리자의 손길이 꾸준히 닿아 있음을 느끼며, 문화재의 가치를 지켜가는 노력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5. 고택에서 이어지는 안성의 하루
고택을 둘러본 후에는 인근의 ‘양성향교’를 함께 방문했습니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자연스럽게 연계 코스로 좋았습니다. 향교 뒤편에는 작은 산책길이 이어져 있고, 그 끝에는 ‘양성면 전망쉼터’가 자리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들녘 풍경이 탁 트여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차량으로 5분 정도 이동하면 ‘양성면 전통시장’이 나오는데, 시장 안 국수집에서 따뜻한 잔치국수를 먹으며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안성팜랜드나 안성맞춤랜드까지 이동해 하루 코스로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고택의 고요함과 시장의 활기가 대비되며, 안성의 여러 얼굴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고택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요일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는 방문객이 적어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주차장 진입로가 좁기 때문에 SUV 차량은 천천히 진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므로 편한 양말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여름철에는 마당의 벌레가 많을 수 있어 벌레 기피제를 챙기면 유용했습니다. 촬영을 원할 경우 관리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원칙이며, 삼각대 사용은 제한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루 위에 빗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분위기가 더 깊어집니다.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져 다시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무리
정무공 오정방 고택은 단순한 고택이 아니라, 시대의 정신과 품격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이었습니다. 돌담을 따라 걸을 때마다 발끝에 전해지는 감촉이 이곳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조용한 오후,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진 마루에 앉아 있자면 일상의 빠른 흐름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봄철 매화가 필 무렵에 오고 싶습니다. 오래된 집이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어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방문하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가진 고요한 품격이 마음속 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역사의 숨결을 가까이 느끼고 싶은 분들께 꼭 한 번 머물러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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